• 조회수 44l좋아요 2
    그림책자세히보기
    올해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뚜벅뚜벅 걸어가요 [이상희/한국일보 20180104]
    별점 :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8-01-15
    조회수 : 692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hankookilbo.com/v/48a204dd9ed044298611c3461d7b532f

    필자 : 이상희. 시인. 그림책 작가

    등록일 : 2018.01.04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책 한 권 읽기’는 특히 성과가 미미했던, 지난해 계획 가운데 하나였다.
    읽다가 만 책이 거처 곳곳에 탑을 이룬 채 갈증과 허기에 속 쓰리던 참의 그 무지막지 졸렬하고 창대한 처방은 서너 번쯤 영혼의 위장을 기름지게 해주었으나, 양가 집안 어른들의 동시 다발 응급 사태로 중단되고 말았다. 삶의 여정이 끝나가는 이, 느닷없는 사고로 몸져누운 이, 읽던 책을 덮는 독자, 다시 길 떠나는 여행자… 독서와 인생과 여행의 공통점은 출발과 여정과 도착에 대한 메타포 외에도 수없이 겹치고 겹친다. 알베르토 망구엘이 ‘은유가 된 독자: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에서 얘기한 바 단테의 인생과 독서와 그 저작 ‘신곡’처럼 긴밀하고도 돈독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은유하고 펼쳐 보이는 것이다.

    새해를 맞는다는 것은 새 책을 펼치듯 한 해 분량 여정을 다시 길 떠나는 일이다. 그림책 ‘조랑말과 나’의 주인공도 길을 떠난다. ‘나에게는 조랑말이 하나 있어요./ 나는 조랑말과 함께 여행을 떠나요’라고 주인공이 소개하고 인사하는 첫 장면은 아이와 조랑말의 두상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얼핏 부담스럽거나 유치하게 여겨지지만, 이들이 길 떠나기 전의 여행자답게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기처럼 무결점의 완벽한 존재로서 오직 여정에 대한 기대감으로 빛나고 있다는 점을 역설하기 위한 연출이다.

    구름도 새도 저마다 제 자리에서 온전히 날아다니는 맑은 날, 아이와 조랑말은 걷기 시작한다. 그런데 난데없이 권총 강도가 나타나 대뜸 조랑말을 겨누고 쏜다. 아이는 씩씩하고 담대하게 사태를 수습한다. 사지를 듬성듬성 꿰맨 조랑말과 함께 다시 나서자니 밤길, 이번에는 난데없이 비행접시가 나타나 조랑말을 해친다. 아이는 이번에도 산산조각 난 조랑말을 수습해 다시 길을 떠나지만 바닷길에서는 악어가, 밤길에서는 귀신이 조랑말을 해친다.

    ‘가다 보면,/ 이상한 녀석이 나타나/ 내 조랑말을 망가뜨려요./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아요./ 나는 다시/ 조랑말과 함께/ 여행을 떠나요.’가 동일하게 네 번 반복되는 이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의 텍스트는 단호하다.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나와 내 조랑말은.’ 앞장 선 조랑말과 아이는 뺨에 상처가 났고 조랑말은 길을 나설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전진하고 있는 둘의 표정은 더욱 다부져 보인다. 얼핏 헐렁해 보이지만 장면 곳곳에 만만찮은 유머가 탑재된 이 그림책은 애니메이션 작업을 접고 그림책 동네로 건너온 홍그림이 5년 가까이 작업한 첫 작품이다. 새로운 길을 걷는 자기 투지와 이상을, 입을 한 일 자로 꾹 다문 채 전진하는 아이와 조랑말 모습으로 투사하고 있다.

    새해의 여정에도 ‘이상한 녀석’은 틀림없이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거듭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조랑말은 더욱 너덜너덜 상처투성이가 되겠지만, 독자이자 여행자인 우리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길 위의 독서’도 다시 시도해볼까.

    이상희 시인ㆍ그림책 작가

     

    작성자 리뷰 더보기
번호 책 제목 리뷰 제목 작성자 등록날짜 조회
577 여행 아직 여행중 정현영 2018-03-23 455
576 조랑말과 나 올해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뚜벅뚜벅 걸어가요 [이상희/한국일보 20180104] 그림책박물관 2018-01-15 693
575 마음 조심 소심 남녀에 보내는 응원 “새해에는 마음 조심하세요!” [ 소윤경 / 한국일보 20171228 ] 그림책박물관 2018-01-15 641
574 산타 할아버지는 정말 있어? 산타 할아버지는 왜 안 죽어? [ 최정선 / 한국일보 20171214] 그림책박물관 2018-01-15 301
573 넘어짐으로써 그 시간들을 기억해 냈다면 [ 김장성 / 한국일보 20171207 ] 그림책박물관 2018-01-15 91
572 소년 소년을 따라, 파랑이 매혹적으로 펼쳐진 세계로... [이상희/한국일보 20171123] 그림책박물관 2018-01-15 81
571 나누면서 채워지는 이상한 여행 아끼는 걸 버려봐 자유를 얻을 테니 [ 소윤경 / 한국일보 20171117 ] 그림책박물관 2018-01-15 92
570 나는 죽음이에요 이웃집 소녀처럼, 우리 가까이에 다가와 있는 죽음 [ 최정선 / 한국일보 20171109 ] 그림책박물관 2018-01-15 81
569 메리 추석 지낸 가족들이 돌아간 저녁... 할머니의 썰렁한 밥상 지켜주는 메리 [ 김장성 / 한국일보 20171102 ] 그림책박물관 2017-11-06 436
568 불어오는 바람 속에 따뜻한 수채화로 그려진 밥 딜런의 평화 메시지 [이상희/한국일보 20171026] 그림책박물관 2017-11-06 375
567 보보는 아기가 아니야 마음이 바쁜 어른이 그림책 이현미 2017-10-22 491
566 Che Spavento - Oh Schreck! 핑크 이현미 2017-10-22 341
565 셀카가 뭐길래! 혼자 있기 미션은 성공할 수 있을까 [ 소윤경 / 한국일보 20171012 ] 그림책박물관 2017-10-18 279
564 악어씨의 직업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악어씨, 부디 행복하시길 [ 최정선 / 한국일보 20170928 ] 그림책박물관 2017-10-18 204
563 사랑해 너무나 너무나 사랑이 진실하기를 기원하는 것 [ 김장성 / 한국일보 20170921 ] 그림책박물관 2017-10-18 178
562 새가 되고 싶어 날개가 있다면 [이상희/한국일보 20170914] 그림책박물관 2017-10-18 163
561 잠시만요 대통령님 위기의 대통령, 우리는 어떤가요? [소윤경/한국일보 20170907] 그림책박물관 2017-09-08 348
560 누가 상상이나 할까요? "나는 하늘을 나는 중이에요" [최정선/한국일보 20170831] 그림책박물관 2017-09-08 294
559 고구마구마 대통령이 그림책을 읽어 준다면 [김장성/한국일보 20170824] 그림책박물관 2017-09-08 283
558 담장을 허물다 부자 되는 법 [이상희/한국일보 20170817] 그림책박물관 2017-09-08 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