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회수 52l좋아요 1
    그림책자세히보기
    추석 지낸 가족들이 돌아간 저녁... 할머니의 썰렁한 밥상 지켜주는 메리 [ 김장성 / 한국일보 20171102 ]
    별점 :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11-06
    조회수 : 914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hankookilbo.com/v/75267fcb87ef47c4bbe6c80f12ca3082

    필자 : 김장성. 그림책 작가, 출판인

    등록일 : 2017.11.02

     

    설날 아침, 모처럼 3대가 둘러앉은 밥상머리에서 할아버지가 말한다. “우린 소도 없고 닭도 없고 개도 없고.

     

    우리도 강생이 한 마리 키우자.” 아빠가 그 저녁으로 옆 동네 강아지 한 마리 데리고 왔다. “강생이는 빨간색이 좋은데.” “메리야, 인자 여가 느그 집이다.” 강아지를 맞이함에 할아버지는 뜬금이 없고 할머니는 주저함이 없다. 그날 밤늦도록 엄마 찾아 낑낑대던 메리, 시간 흘러 어느덧 다 자란 메리가 되었을 때, 뜬금없던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은 할머니, 그 곁에 아무나 보고 짖지도 않고 꼬리를 흔들흔들 흔드는 순한 메리.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는 노망이 난 가운데도, 단지 소도 닭도 없어서 강생이 한 마리 키우자 한 게 아니었는지도. 그러고 보니 할머니 또한, 그저 다른 이름을 몰라서 강아지를 대뜸 메리라 불렀던 건 아니었겠다. 전에 키우던 개도 메리였고, 전전에 키우던 개도 메리였으니. 그뿐인가, 할머니네 동네 개들은 몽땅 이름이 메리다.

    봉숭아 핀 여름날, 그 많은 메리 가운데 할머니네 메리에게 떠돌이 수캐 하나 다녀가고, 얼마 뒤 메리는 새끼 세 마리를 낳는다. 아직 이름 없는 강아지 세 마리. 그래도 언놈이 언놈인지 다 아는 할머니는 놀러 온 옆 동네 할머니 외로운 눈치에 젤로 살가운 놈 하나 업혀 보내고, 배달 나온 슈퍼 집 할아버지 손수레에 젤로 기운 센 놈 하나 실려 보내고, 마지막 남은 한 마리는 마실 온 이웃 할매 손녀딸 품에 안겨 보낸다.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시골에 떠맡겨진 그 아이가 다리 하나 짧게 태어난 그 녀석에게서 당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 밤, 잎 진 겨울나무에 희미한 눈발 고요히 내려앉는데, 새끼들 떠나보낸 슬픈 메리는 늦도록 눈 맞으며 낑낑거린다. 그래도 여전히 아무나 보고 짖지도 않고 꼬리를 흔들흔들 흔드는 순하디 순한 메리. 다시 할머니와 단둘만 남았다.  또 얼마큼 시간이 흘러 은행잎 노랗게 물든 한가위. 명절에나 한 번씩 찾아오는 자식들 우르르 왔다가 우르르 떠나간 뒤, 할머니 홀로 남아 진지를 잡숫는다. “혼자 사는데, 무슨 음식을 이래 많이 놓고 가나. 다 묵도 못하도록.” 그러면서도 갈비찜을 참 맛나게 자시던 할머니, 자꾸 창밖을 힐끔거리다가 끙! 상을 들고 마당으로 나가신다. “니도 추석이니까 많이 무라. 이게 그 비싼 한우갈비다.” 평상에 앉아 갈비토막을 건네는 할머니에게 메리는 제일 신나게 꼬리를 흔들흔들. 그렇게 시골마을에 황혼이 진다.

    북적대는 설날 아침 밥상에서 시작한 그림책이 할머니와 메리 단둘만 남은 추석날 저녁 밥상에서 끝났다. 흔하디 흔한 농촌 풍경. 젊은이들 죄다 도회로 떠난 휑한 마을을 노인들만 남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강아지라면 그저 ‘메리’로 그만인 무던한 노인들, 헤어진 어미아비 자기들 편차고 떠맡긴 아이를 묵묵히 돌보는 순한 노인들. 거기 그 노인들처럼 무던하고 순한 ‘메리’라도 있어 쓸쓸함이 덜한데, 정이 없는 세월은 흘러만 갈 테니 할머니도 머잖아 세상을 뜨실 게다. 그러면, 메리는 누가 먹이고 시골집은 누가 지킬까?

    배경은 더없이 쓸쓸한 현실이지만, 이야기는 경쾌하게 다가와 따뜻하게 안긴다. 젊은 손길 닿지 않아 남루한 시골 풍경이 자잘한 세부까지 그대로건만, 그 풍경을 그려 낸 그림은 꼬질꼬질하면서도 따뜻하고 짠하게 아름답다. 그림이란 보는 대로 그리는 것이니, 작가가 그 풍경을 그리 본 덕분이리라. 그 따뜻한 눈길 보태지고 또 보태지고, 그 짠한 풍경 보여지고 또 보여지면 조금씩 나아지려나? 고향집 다시 떠들썩해지고, 이웃집 손녀딸 얼굴에 그늘 걷혀 더 밝고 명랑하고 씩씩해지려나? 메리가 흔들흔들 꼬리를 흔든다.

     

     

    김장성 그림책 작가ㆍ출판인

     

    작성자 리뷰 더보기
번호 책 제목 리뷰 제목 작성자 등록날짜 조회
577 여행 아직 여행중 정현영 2018-03-23 1366
576 조랑말과 나 올해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뚜벅뚜벅 걸어가요 [이상희/한국일보 20180104] 그림책박물관 2018-01-15 2015
575 마음 조심 소심 남녀에 보내는 응원 “새해에는 마음 조심하세요!” [ 소윤경 / 한국일보 20171228 ] 그림책박물관 2018-01-15 1597
574 산타 할아버지는 정말 있어? 산타 할아버지는 왜 안 죽어? [ 최정선 / 한국일보 20171214] 그림책박물관 2018-01-15 764
573 넘어짐으로써 그 시간들을 기억해 냈다면 [ 김장성 / 한국일보 20171207 ] 그림책박물관 2018-01-15 432
572 소년 소년을 따라, 파랑이 매혹적으로 펼쳐진 세계로... [이상희/한국일보 20171123] 그림책박물관 2018-01-15 408
571 나누면서 채워지는 이상한 여행 아끼는 걸 버려봐 자유를 얻을 테니 [ 소윤경 / 한국일보 20171117 ] 그림책박물관 2018-01-15 401
570 나는 죽음이에요 이웃집 소녀처럼, 우리 가까이에 다가와 있는 죽음 [ 최정선 / 한국일보 20171109 ] 그림책박물관 2018-01-15 393
569 메리 추석 지낸 가족들이 돌아간 저녁... 할머니의 썰렁한 밥상 지켜주는 메리 [ 김장성 / 한국일보 20171102 ] 그림책박물관 2017-11-06 915
568 불어오는 바람 속에 따뜻한 수채화로 그려진 밥 딜런의 평화 메시지 [이상희/한국일보 20171026] 그림책박물관 2017-11-06 798
567 보보는 아기가 아니야 마음이 바쁜 어른이 그림책 이현미 2017-10-22 946
566 Che Spavento - Oh Schreck! 핑크 이현미 2017-10-22 752
565 셀카가 뭐길래! 혼자 있기 미션은 성공할 수 있을까 [ 소윤경 / 한국일보 20171012 ] 그림책박물관 2017-10-18 697
564 악어씨의 직업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악어씨, 부디 행복하시길 [ 최정선 / 한국일보 20170928 ] 그림책박물관 2017-10-18 568
563 사랑해 너무나 너무나 사랑이 진실하기를 기원하는 것 [ 김장성 / 한국일보 20170921 ] 그림책박물관 2017-10-18 507
562 새가 되고 싶어 날개가 있다면 [이상희/한국일보 20170914] 그림책박물관 2017-10-18 485
561 잠시만요 대통령님 위기의 대통령, 우리는 어떤가요? [소윤경/한국일보 20170907] 그림책박물관 2017-09-08 697
560 누가 상상이나 할까요? "나는 하늘을 나는 중이에요" [최정선/한국일보 20170831] 그림책박물관 2017-09-08 620
559 고구마구마 대통령이 그림책을 읽어 준다면 [김장성/한국일보 20170824] 그림책박물관 2017-09-08 632
558 담장을 허물다 부자 되는 법 [이상희/한국일보 20170817] 그림책박물관 2017-09-08 561